공공장소나 대중교통에서 임산부나 노약자를 배려하는 모습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지하철은 각 칸마다 노약자석과 임신부석을 따로 두고 있다. 일본의 지하철은 한국과는 달리 이게 나뉘어 있지 않다.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그리고 유아나 예비 엄마 모두를 배려하기 위한 ‘우선석’을 지하철 각 칸마다 지정해놓고 있다.

노약자나 임신부 전용 자리를 만들었다 해도 이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아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리를 선점한 이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비켜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 도쿄 지하철이 IT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임신부 보호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자리에 앉아있는 승객과 임신부를 스마폰 앱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현재의 ‘우선석’과는 별개다. 도쿄 도심의 중심가를 통과하는 긴자노선(Ginza Line)에서 이미 시범 서비스가 진행되었다.

도쿄 지하철과 일본의 대표적인 메신저 업체인 라인(Line), 다이닛폰인쇄(Dai Nippon Printing Co) 등이 함께 참여한 이 서비스는 따뜻한 마음씨를 기본 바탕으로 한다. 서비스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임산부를 위해 기꺼이 자기 자리 내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라인의 특별 계정에 먼저 등록을 해야 한다. 임신부가 앱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지하철 내부의 가까이 있는 임신부 후원자들에게 이 내용이 전달되고, 앱은 예비 엄마가 찾아가 앉을 수 있도록 정확한 위치를 알려준다. 이 새로운 시스템의 본격적인 시행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앞으로 노약자나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이들에게까지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도쿄 지하철이 이런 서비스를 생각하게 된 것은 자리를 잘 양보하지 않으려는 각박한 세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하철을 타면 누구나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머리를 숙인 채 여기서 눈을 떼지 못한다. 주위에 누가 서 있는지 둘러보지도, 의식하지도 않게 된다. 스마트폰은 못 본 척 핑계 삼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모두 입다물고 아래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입을 떼기란 무척 어렵다. 이게 비단 일본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다.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013년부터 지하철에 임신부 배려석을 만들었고, 2015년부터는 임신부를 위한 좌석과 바닥을 모두 핑크색으로 바꿔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가 2015년 임산부 2,700명을 대상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배려를 받고 있다는 응답은 절반을 조금 넘긴 58.3%에 불과했다.

도쿄 지하철은 승객과 임신부를 이어주는 메신저 앱의 개인 신상 정보 유출 우려에 대해 결코 양쪽의 정보가 담기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IT 기술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닌다. 그 부작용이 지나치게 커져 해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메신저는 편을 가르고 따돌리는 도구가 될 때가 많았다. IT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임신부와 노약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이유는 차갑게만 느껴지는 디지털을 따뜻하게 데워 세상을 변화시키는 불씨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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