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어려운 계산을 맡기면 몇 초면 답이 나옵니다. 긴 글도 읽을 필요 없이 요약해달라고 하면 됩니다. 이해되지 않는 개념은 다시 설명해달라고 하면 되고, 글쓰기조차 처음부터 끝까지 대신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왜 여전히 직접 계산하고, 긴 글을 읽고, 힘들게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할까요.

영국 경제학자 대니얼 서스킨드Daniel Susskind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이 질문에 아주 분명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AI 시대일수록 문해력과 수리력 같은 기초 역량을 더 강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능력 일부를 대신해왔습니다.

한때는 수천 쪽의 책을 기억하는 능력이 중요한 지적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자와 책이 등장했고, 인터넷과 검색엔진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더 이상 외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사라져도 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스킨드는 문해력과 수리력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최근 OECD의 PISA 결과는 세계 청소년의 읽기와 수학 기초 능력이 장기간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시기와 이 하락이 겹친다는 지적도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이제 AI까지 등장했습니다.

계산은 AI가 해주고, 글은 AI가 요약해주며, 과제의 답도 만들어줍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당연한 질문이 생깁니다.

“기계가 해주는데 내가 왜 해야 하지?”

바로 여기에 교육이 답해야 합니다.

문해력과 수리력은 단순히 국어 문제와 수학 문제를 잘 풀기 위한 능력이 아닙니다.

읽고 이해하고, 비교하고, 추론하고,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고차원적 사고의 바닥에 놓여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직업이 남을지 모릅니다. 어떤 직업이 새로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교육계에서는 늘 ‘미래 역량’을 이야기합니다.

창의성, 비판적 사고, 문제 해결력, 협업 능력 같은 말들이 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 모든 능력이 무엇 위에서 만들어지는지는 자주 잊습니다.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요.
수량과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복잡한 문제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AI 시대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AI는 아주 똑똑하지만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 어떤 질문에서는 전문가 수준의 답을 내놓다가도, 다른 질문에서는 틀린 내용을 놀라울 정도로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 답이 맞는지 틀리는지 판단하려면 결국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AI를 많이 써본 경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AI가 내놓은 답을 의심하고, 검증하고,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AI가 강력해질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기초 역량의 가치는 더 커집니다.

서스킨드는 잉글랜드의 사례를 듭니다. 세계적인 하락 추세 속에서도 잉글랜드의 문해력과 수리력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를 학교가 기초교육을 꾸준히 강조해왔다는 데서 찾습니다.

반대로 ‘21세기 학습’, ‘미래 지향적 교육’ 같은 말에 빠져 기초교육을 약화시키는 흐름에는 상당히 비판적입니다.

아이러니합니다.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면서, 정작 미래에 가장 필요한 토대를 허물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AI를 금지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서스킨드가 제안하는 해법은 의외로 오래된 곳에 있습니다.

계산기입니다.

1980년대 계산기가 학교에 들어왔을 때도 비슷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계산 능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산기를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계산기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계산기 없이 계산하는 법도 가르쳤습니다.

AI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AI와 함께 하는 공부와 AI 없이 하는 공부를 나누어 가르치고, 둘 다 평가하는 것입니다.

AI를 이용해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혼자 긴 글을 읽고, 스스로 문장을 쓰고, 손으로 계산하고,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 앞에서 오래 버티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어쩌면 AI 시대의 교육에서 가장 위험한 착각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AI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이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AI가 대신해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직접 해봐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읽기와 쓰기, 계산과 사고가 그렇습니다.

AI가 없어서가 아니라,
AI가 있기 때문에 더 필요한 교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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