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가 신입사원 채용에서 학력 제한을 폐지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변화에서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학벌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그 대신 무엇을 보겠다고 했느냐입니다.
SK하이닉스가 제시한 것은 세 가지 ‘역량’입니다.
첫째는 본질적 탐구 역량입니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미지의 공정 난제를 만났을 때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힘입니다. 이미 배운 지식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는가보다 처음 보는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탐구하는가를 보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변화 적응력입니다. 반도체와 AI처럼 기술 변화가 빠른 환경에서는 지금 알고 있는 지식보다 새로운 기술과 도구가 등장했을 때 얼마나 빨리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쉽게 말하면 **‘무엇을 알고 있는 사람’보다 ‘새로운 것을 배울 줄 아는 사람’**을 찾겠다는 뜻입니다.
셋째는 사고적 다양성입니다. 복잡한 문제는 한 사람의 지식이나 하나의 관점만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고,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며, 그 충돌 속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SK하이닉스가 이 세 가지를 구호로만 내걸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채용 방식 자체를 바꿨습니다.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서류를 접수한 뒤 온라인 인적성 검사를 거쳐, 지원자는 반나절 동안 진행되는 심층 면접을 받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문제 해결 발표’입니다. 지원자는 면접장 PC에서 LLM을 직접 사용해 주어진 직무 과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를 발표합니다. AI를 사용했는지를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AI를 도구로 제공하고, 그것을 이용해 어떻게 문제를 파악하고 정보를 탐색하며 자신의 해결책을 만들어내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 심층 인터뷰, 그룹 토론, 비대면 영상 인터뷰가 더해집니다. 문제를 혼자 잘 푸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과 부딪치고, 그 과정에서 생각을 발전시키는 능력까지 확인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변화도 있습니다. 우수한 지원자는 AI 해커톤을 통해 서류 전형을 건너뛰고 곧바로 면접으로 갈 수 있습니다. 최종 합격자의 입사는 내년 1월입니다.
결국 세 가지 역량과 전형 방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본질적 탐구 역량은 정답 없는 직무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변화 적응력은 LLM이라는 도구를 실제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사고적 다양성은 인터뷰와 그룹 토론에서 확인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고 나면 불편한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우리 교육은 지난 12년 동안 아이들에게 이 가운데 무엇을 길러주었습니까.
본질적 탐구 역량은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파고드는 힘입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가장 오랫동안 훈련받은 것은 이미 정답이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푸는 일이었습니다. 시험 범위가 있고, 출제 유형이 있고, 채점 기준이 있습니다. 사교육은 이 구조를 가장 효율적으로 공략했을 뿐입니다.
변화 적응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실패해보는 것보다 검증된 방법으로 실수하지 않는 것이 유리한 것이 우리 교육입니다. 새로운 길을 찾는 학생보다 정해진 길을 빠르게 달리는 학생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어왔습니다.
사고적 다양성은 더욱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다르게 생각하라’고 말하면서도 시험에서는 같은 답을 요구합니다. 수행평가와 프로젝트 수업이 늘어났지만, 그것마저 평가 기준과 모범 사례에 맞추는 또 하나의 시험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교육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교육은 공교육과 대학입시가 만들어놓은 정답 중심의 경쟁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산업일 뿐입니다.
그래서 SK하이닉스의 이번 채용은 교육의 관점에서 꽤 의미심장합니다.
기업은 이제 AI 사용을 막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두에게 AI를 쥐여주고 묻습니다.
“이 도구를 가지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외워온 지식의 양보다 처음 보는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새로운 도구를 얼마나 빨리 익히는지, 다른 사람의 생각과 부딪치면서 어떻게 더 나은 답을 만들어내는지를 보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이런 능력을 어디에서 배워왔느냐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충분히 배우기 어려웠고, 학원에서는 더욱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가장 오랫동안 반복해온 훈련과 좋은 기업이 이제 요구하기 시작한 능력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생겼습니다.
학교는 정답을 가르쳐왔고, 기업은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학력 제한 폐지는 경쟁의 완화를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학벌이라는 익숙한 간판을 걷어낸 자리에 오히려 더 어려운 질문이 놓이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가.
처음 보는 기술과 도구를 두려워하지 않고 배울 수 있는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함께 새로운 답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SK하이닉스가 제시한 세 가지 미래 역량은 한 기업의 채용 기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기업이 원하는 사람의 모습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면 이제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 학교는 여전히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평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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