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크 업계의 영향력있는 투자자, 마크 큐반은 X(구 트위터)에 짧은 문장 하나를 남겼습니다.

“대규모언어모델(LLM) 사용자는 크게 두 종류다.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쓰는 사람과,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되려고 쓰는 사람.”

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전 구단주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테크 억만장자인 그의 말치고는, 한 줄짜리 분류가 꽤 날카롭다. 그리고 불편하다.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전자라고 믿지만, 실제 행동은 후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도구의 역사는 언제나 이 두 유형의 긴장 위에 서 있었다. 계산기가 보급됐을 때, 어떤 학생은 수식의 구조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계산기를 썼고, 어떤 학생은 구구단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계산기를 찾았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보를 탐색하는 도구로 쓰는 사람이 있었고, 생각을 외주화하는 도구로 쓰는 사람이 있었다.

AI는 그 긴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이전 도구들은 적어도 ‘입력’을 인간이 해야 했다. 검색은 내가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아야 했고, 계산기는 어떤 수식을 세울지 내가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AI는 질문 설계마저 대신해줄 수 있다. 이 편리함의 끝에서 인간의 사유는 어디쯤 서 있을까.

벤처캐피털리스트 빌 걸리는 큐반의 말에 “100% 동의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자신만의 커리어 경로를 개척하려는 사람에게 AI는 제트 연료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제트 연료는 방향이 맞을 때만 빠를 뿐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더 빠르게 날아가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가속된 길 잃음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배움을 포기하는 것이 정말 ‘게으름’의 문제일까?

미스트랄 AI의 CEO 아르튀르 멩슈는 AI가 초래하는 가장 큰 위험으로 ‘디스킬링(deskilling)’, 즉 역량의 퇴화를 꼽는다. 사람들이 점점 AI에 의존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종합하는 능력 자체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정보를 종합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능력, 그것이 학습의 핵심이다.”

이 말이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디스킬링은 의지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끼면서, 사실은 시스템이 설계한 편리함의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일 수 있다.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취향을 ‘추천’하다 결국 취향 자체를 형성하듯, AI가 생각을 ‘보조’하다 결국 생각의 방향을 결정하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큐반의 이분법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숨은 함의는 단순하지 않다.

문제는 어떤 유형의 사용자가 되느냐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AI에게 답을 얻고 있는가, 아니면 AI를 통해 더 좋은 질문을 만들고 있는가.

답을 얻는 것과 질문을 키우는 것.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인간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자리가 있다.

인쇄하기
이전
0

소요 사이트를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액수에 관계없이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이 소요 사이트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협동조합 소요 국민은행 037601-04-047794 계좌(아래 페이팔을 통한 신용카드결제로도 가능)로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