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이 학교 안으로 들어온 지 채 3년이 되지 않았지만, 미국 학부모와 시민들의 반응은 이미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5년 미국 PDK 여론조사 결과는 단지 기술 도입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 수준을 넘어서, 공교육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AI의 교육적 활용을 둘러싼 인식 변화는 매우 분명합니다. 교사가 수업을 준비할 때 AI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지지는 2024년 62%에서 2025년 49%로 13%포인트 하락했습니다. AI를 개별 튜터처럼 사용하는 방안도 65%에서 60%로, 표준화 시험 대비 도구로의 활용은 64%에서 54%로 줄었습니다. 학생이 숙제를 위해 AI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 응답은 43%에서 38%로 감소했습니다.

가장 주목할 수치는 ‘학생의 성적이나 평가 데이터를 AI에 제공하는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학부모 응답자의 68%가 이를 반대한다고 밝혔으며, 이는 기술 활용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장벽이 바로 프라이버시와 정보 주권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많은 학부모들은 AI의 편리함보다 아이의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되고, 저장되며, 활용되는지에 대해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 불신은 공교육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와도 연결됩니다. 자신의 지역 공립학교에 A 또는 B 등급을 준 응답자는 43%에 불과했으며, 이는 10년 전인 2013년 53%에 비해 뚜렷한 하락세입니다. 전국 공립학교에 대해 A 또는 B 등급을 준 비율은 단 13%에 그쳤습니다. 이는 2004년의 26%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으로, 미국 공교육에 대한 장기적 신뢰 하락이 뚜렷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수치들은 AI 기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공교육을 둘러싼 신뢰의 문제가 기술 수용의 핵심이라는 점을 드러냅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AI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기술을 도입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그 기술을 누가, 어떻게, 어떤 원칙에 따라 사용할 것인가’라는 신뢰와 투명성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 이 조사 결과는 시사점이 큽니다. 한국 또한 교육 현장에서 AI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교사와 학부모, 학생 간의 신뢰 기반은 취약한 상태입니다. 디지털 교과서, AI 튜터, 학습 분석 플랫폼 등 다양한 기술이 도입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명확한 사용 기준, 데이터 보호 장치, 교육적 효과에 대한 투명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AI는 교육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도구일 수 있지만, 그것이 신뢰 없는 시스템 위에 구축된다면 오히려 교육의 불평등과 혼란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학부모와 교사, 학생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설명과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기술은 편리함보다 불신을 앞세운 존재가 되기 쉽습니다.

AI를 단지 ‘혁신’으로 바라보기보다, 공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과 병행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미국의 사례에서 읽어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기술 도입이 아니라, 공교육이 왜 필요한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그리고 AI가 그것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철학적 기반입니다.

기술은 언제든 도입할 수 있지만, 신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은 그 신뢰 위에서만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인쇄하기

이전
0

소요 사이트를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액수에 관계없이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이 소요 사이트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협동조합 소요 국민은행 037601-04-047794 계좌(아래 페이팔을 통한 신용카드결제로도 가능)로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