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사이, 미국 교육 현장에서 일어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깊은 변화 중 하나는 인공지능(AI)의 확산입니다. 단순히 학생들이 ChatGPT로 숙제를 대신하는 수준을 넘어, 교사들이 AI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교육 스타트업 ‘매직스쿨(MagicSchool AI)’은 이미 250만 명의 교사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밝힐 정도입니다. 미국 전역의 거의 모든 학군(school district)에 AI 사용자 교사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플랫폼은 교과서를 업로드하면 AI가 자동으로 학습 목표, 수행 과제, 채점 기준표(루브릭), 심지어 성적 코멘트까지 생성해줍니다. 여기서 채점 기준표란, 과제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지 세부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예를 들어 “A는 분석이 깊고 논리적일 것”, “B는 개념은 이해했으나 사례가 부족할 것”처럼 점수에 따른 구체적 평가 기준을 포함합니다. 교사들이 일일이 만들던 수많은 문서 작업이 몇 초 만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제 AI는 단순한 ‘정보 제공 도우미’를 넘어, 교육 설계 자체를 함께 하는 ‘설계자’의 위치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AI의 도입은 균일하지 않습니다. 일부 교사들은 여전히 “AI는 부정행위의 도구”라며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학생의 자기주도성과 창의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뉴욕 퀸스에 있는 명문 공립고 ‘타운젠드 해리스 고등학교(Townsend Harris High School)’는 흥미로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모든 학생이 여름 방학 독후감 과제를 손으로 직접 써서 교실에서 제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컴퓨터로 작성해서 가져오는 숙제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교사들의 판단이 작용한 것입니다. 디지털 세대에게 손글씨는 의외로 가장 강력한 ‘신뢰 장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AI는 이제 새로운 ‘문해력(AI literacy)’을 요구합니다. 단순히 AI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을 넘어,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언제 활용할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대학 수업의 3분의 1을 ‘AI 활용법’으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일부 대학은 AI 활용 역량을 주요 전공과정으로 개편하고 있으며, AI 관련 자격증이나 학위 소지자의 연봉은 평균보다 50% 이상 높습니다.
공교육도 변하고 있습니다. 미국 마이애미 교육청은 2025년 10월부터 ‘교실 내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AI를 막을 수 없다면,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겠다는 전환입니다. AI 시대에 교사가 해야 할 역할은 ‘기술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배우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AI 교육 도입은 위에서의 명령이 아니라, 현장의 실험과 필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교사들이 AI를 직접 써보며 그 한계와 가능성을 실감했고, 그 과정이 제도화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교육 정책은 여전히 기술을 ‘관리’하거나 ‘통제’하려는 방향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AI는 교육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우리가 무엇을 하도록 AI에게 요청하느냐입니다. 이제 교실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오늘 선생님은 무엇을 가르쳤나요?”가 아니라 “오늘 우리는 어떤 AI와 함께 배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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