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아직 젊은 아버지는 사상계를 정기구독했습니다.
장준하 선생이 만든 그 책은 당시 시사잡지로는 꽤 읽을거리가 많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던 아직 젊은 아버지는 당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젊은 아내와 4남매. 뭘 먹고 살까 걱정도 됐지만 농사를 짓고 있어 밥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젊고, 건강했고, 다시 직장을 찾을 희망도 있었지요.
아버지는 이제 일곱 살짜리 장남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1, 2, 3, 4 숫자도 가르쳤습니다.
신통하게도 아들녀석은 글씨도 잘 익히고 잘 썼습니다.
늦장가에 아이도 한참 있다 생겨서 귀하디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젊은 아버지는 행복했습니다.
강경상고를 졸업한 아버지는 머지않아 취직이 될 것이라 믿었는데 정말 얼마 후 안정된 직장이라 일컫는 국가기관이었던 전매청(민영화 이전 이름. 지금의 KT&G, 전 한국담배인삼공사)에 취직이 됐습니다. 아이들만 잘 크면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젊은 아버지는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에게 매달 배달되는 사상계 봉투를 잘라 연습장을 만들었습니다.
앞장에 ‘공책(국어, 산수)’이라 제목을 붙이고 아들 이름을 써넣었습니다. ‘이길형’
“자, 1부터 10까지 써볼까?”
“송아지 노래 한 번 써볼까?”
어린아들은 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엄했지만 언제나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잘 깎아진 연필로 어린아들은 썼습니다.
‘송아지송야지얼룩송아지엄머머마소도얼룩소엄마닮었네아버지는나귀타고장에가시고할머니는’
‘1234567891011121314151617181912021222324…’

‘공책’에는 1965년 2월이라고 만년필로 써 있고, 서울중앙요금별납 제3종이라는 도장이 박혀 있습니다.
당시 사상계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2가 100번지.
수신인은 이상균.

 

며칠 전 남편이 이 ‘공책’을 제게 보여줬습니다.
이 공책에 글씨 연습을 한 어린아들이 바로 그였습니다.
그리고 사상계 수신자는 시아버님이었습니다.
아버님은 1934년생. 남편은 1959년생.
젊은아버지는 서른둘, 어린아들은 일곱 살.
전매청에서 정년퇴직하신 아버님은 올해 여든다섯이십니다. 아직 몸과 마음이 건강하십니다.
젊은 아버지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그 어린아들은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올해 육십. 방송기자로 젊은시절을 보내고 퇴직했습니다.
한 세월이 가도록, 한 시대가 저물도록
이 빛바랜 노트를 간직했다 물려주신 시아버지가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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