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학교는’를 밀어내고 전세계 1위로 올라선 넷플릭스 드라마가 있다. ‘애너 만들기’(Inventing Anna)라는 사기꾼 이야기다. 실화다. 2013년 미국 뉴욕의 사교계에 20대 초반의 독일 백만장자의 딸이 나타난다. 명품에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누비고 호화 여행을 즐기며 100달러짜리 팁을 뿌리고 다닌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일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린다.
이내 부동산과 테크기업, 패션과 예술 분야의 내로라 하는 뉴욕의 최상류층 인사들이 그녀 주위에 모여든다. 하지만 모든 게 꾸며낸 거짓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독일에서 소규모 사업을 했지만 재벌이나 명문 가문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녀 역시 예술학교 중퇴에 패션잡지 인턴 경력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돈 한 푼 없으면서 호화 생활 비용을 주변 인사들이 대신 결제하게 하거나 카드를 빌려서 썼다. 심지어 막대한 자금을 대출받아 미술품을 전시하는 상류층 전용 사교클럽을 만들 계획을 실행하기도 했다. 도도함과 거침없는 말투는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주인공 애너 델비의 실제 이름은 애너 소로킨, 가짜 상속녀 행세는 4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소로킨은 결국 2019년에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월 초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책이 출판되었고, 드라마로도 나왔다. 여기서 얻은 수입으로 그녀는 사기 생각보다 더 많은 돈을 챙겼다.
넷플릭스 애나와 실제 애나, 조선일보 캡쳐
한때 실리콘밸리의 촉망받는 스타트업으로 유명세를 탔던 테라노스(Theranos)의 창업자 리자베스 홈즈가 사기 혐의로 2022년 1월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홈즈는 바이오 벤처 테라노스를 설립한 뒤 2012년애 피 한 방울로 암과 당뇨 등 240여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에디슨’ 키트를 개발했다고 홍보했다.
의료산업의 놀라운 혁신으로 받아들여지며 이 진단 키트애 세계가 열광했고, 홈즈는 일약 스타가 되었으며, 투자자들이 앞다퉈 줄을 섰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과 벤처업계의 큰 손 팀 드레이퍼가 거액의 자금을 댔고, 바이든 대통령,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이 멘토로 나섰다. 홈즈는 포브스의 표지 인물 장식과 TED 출연은 물론 미디어에 의해 영웅으로 떠받들어졌다. 줄기세포의 황우석 현상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의 추적 보도로 사기극은 3년 뒤 종말을 맞았다. 검사의 오차가 68%나 되고, 실제 확인 가능한 검사도 15가지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에 90억달러(약 10조 7550억원)에 이르던 기업가치는 휴지조각으로 변했고, 회사는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이 사건 역시 책(배드블러드:테러노스의 비밀과 거짓말)으로 나왔고, 영화화를 앞두고 있다.
두 사기 사건의 주인공인 애나 호킨스와 엘리자베스 홈즈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이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고, 짧은 기간에 성공을 거둔 공통점이 있다. 뉴욕의 사교계와 실리콘밸리가 배경이지만 허위와 과장, 인맥이 등장하는 방법은 다르지 않았다.
애나 호킨스는 최상류층 사회 그들만의 생태계를 제대로 읽었다. 실력만으로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그 세계에 피라미드식으로 인맥을 연결했다. 앱을 개발한다며 IT 전문가 행세를 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거액의 투자를 따내는 방식도 다르지 않다. 셀카와 소셜 미디어는 부유한 상속녀의 화려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비교적 좋은 가문에 스탠포드대를 중퇴한 엘리트다. 십대 후반에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온갖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했다고 알리면서 스타가 되었다. 홈즈의 가문과 학력은 의심의 여지를 가렸고, 유명 인사들이 뒷배경이 되어 힘을 실어주었다. 실리콘 밸리는 여기에 동조했고, 홈즈는 검은 터틀넥 타셔츠로 자신을 새로운 스티븐 잡스로 치장했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온갖 것을 다 알 수 있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속이는 일은 반복된다. 검증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믿을 수 있게 만드는 분위기와 배경 때문이다. 그 속성을 정확히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상류층 사회와 실리콘 밸리도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게 열린 세상에서 이런 기막힌 일이 벌어지는 것은 미국 사회의 역설이다.
사람은 시각적인 부분이 제일 예민하다고 들었어요.
한국 사회도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고객이 갑질하기도 하고 반대로 직원이 갑질하기도 하고….
외국은 우리나라보다 덜 할 거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의 기본적인 편향성은 비슷한가 봐요.
저도 뭐 그닥 그 편향성 밖에 있다고 말 할 수 없기에….
다만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들의 그 대범함? 은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쫄지 않고 일을 추진할 용기가 있다면 사기가 아니라 실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열정적 과정이 되지 않을까요?
믿을 수 있게 만드는 분위기와 배경 이라는 말이 맞네요. 검증없이 사진과 말 만으로도 많은 거짓이 넘치니 미국 뿐만아니라 전세계 아니 인간사회의 병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