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명물인 전통의 빨간색 2층 버스가 배터리로 엔진을 움직이는 전기차로 바뀌고 있다. 먼저 도입된 200여대의 2층 전기버스를 위해 특별한 장치가 만들어졌다. 버스가 움직일 때 너무 조용해서 혹시 보행자들이 차가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해 다치는 사고가 나지 않을까 우려해 일부러 가짜 소음을 내게 한 장치다.

자동차가 뿜어내는 매연과 소음은 누구에게나 공공의 적이었다. 도시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때문에 자동차 메이커는 매연과 소음을 잡는데 사활을 걸었다. 전기차의 등장은 이런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했지만 무소음은 보행자의 안전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유발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무소음이 소음을 부활시킨 것이다.

런던 교통당국은 북런던 토트넘(Tottenham)에서 보행자와 시각 장애인, 자전거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전기버스 인공 소음의 효율성을 입증했다. 전기 자동차나 하이브리드 차량, 수소차 같은 차량의 지나친 정숙성이 인명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예고되면서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자동차 소음이 규제가 아닌 보강이라는 대접을 받게 되었다.

런던 2층 전기버스의 소리를 만든 젤리그 사운드 홈페이지 캡처, https://soundcloud.com/zelig-sound/tfl-urban-bus-sound-stationary

유럽연합은 2019년 7월부터 출시되는 이들 저소음 차량에 경보 장치인 AVAS(Acoustic Vehicle Alerting System)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시속 20km 이하 저속으로 달릴 때 56 데시빌(db) 이상의 인공적인 소리를 내게 하는 장치다. 미국은 2020년 하반기부터 시속 30km 이하 운행시 소음 발생을 의무화 하기로 했고, 한국은 이미 2018년부터 시속 10km 이하 최소 50 데시빌, 20km 이하 56 데시빌의 경고음 장치를 도입했다.

자동차의 소음은 보행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운전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엔진 소리를 차량 내부에서 들리지 않게 하는 조용한 차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엔진 소리는 운전자가 속도감을 느끼는 척도이다. 완벽한 소음 차단은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다. 가속의 엔진음이 사라지면 과속으로 이어지고 그만큼 사고 위험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차량마다 고유의 묵직한 엔진 소리는 운전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전기차의 인공 소음이 반드시 부릉거리는 자동차 내연 기관의 일반적인 소음일 필요는 없다. 젤리그 사운드(Zelig Sound)가 만든 런던 2층버스의 소음은 부드러운 F#maj7 코드의 맥박이 뛰는 것 같은 느낌의 소리를 낸다. 이렇듯 소음을 죽인 전기차는 새로운 소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청각적인 요소를 이용해 소비자에게 특정 브랜드를 알리는 소닉 브랜딩(Sonic Branding) 경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유명 자동차 업체들이 가세했다.

시가 1억원이 넘는 재규어의 SUV 전기차 I-PACE의 소리는 전자음악의 대가로 한국에서도 공연한 적이 있는 전자음악의 대가 리차드 디바인(Richard Devine)이 만들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영감을 받아 우주선의 느낌을 준다. 포드자동차의 럭셔리 SUV Lincoln Aviator의 경고음은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재구어 코리아 홈페이지 캡처

BMW에서는 라이온킹, 인셉션, 다크나이트, 인터스텔라 등을 만든 영화 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Hans Zimmer)와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렌조 비탈(Renzo Vitale)이 팀을 이루었다. 2019 LA 모터쇼에 선보인 BMW의 전기 컨셉트 카인 Vision M Next의 화려한 전자음은 이들이 만들었다.

자동차의 생태계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2025년부터 기름이나 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차량의 판매 금지를 선언했고, 독일은 2050년까지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 할 전망이다. 전기차의 대중화는 자동차 내연기관의 천편일률적인 소음을 사라지게 했다. 그리고 자동차 메이커와 차량 별로 인위적인 소리 경쟁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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