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쓰는 스마트폰의 기능 가운데 하나가 위치 확인과 길찾기다. 네이버나 다음의 지도 서비스는 찾아갈 곳을 미리 보여주고 승용차와 대중교통, 또는 도보로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과 동선을 안내한다. 특히 전세계 거리 곳곳을 손바닥처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구글 스트리트 뷰(Google Street View)는 동네 구석구석까지 확인이 가능해 해외여행에서 유용하게 활용된다. 360도 카메라를 장착한 차량과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 찍은 이런 거리 모습 사진은 지금까지는 단순히 길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 연구진은 스쳐 지나가는 사진 속의 거리 모습을 정보의 보물 창고로 만들었다.
스탠포드 연구진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미국 200개 도시의 구글 스트리트 뷰 거리 모습 사진 5천만장과 위치 데이터를 연구했다. 사진 속에 보이는 2천2백만대의 차량에 주목했다. 미국 전체 자동차의 8% 정도다. 인공지능이 자동차의 제조사나 모델, 연식 등을 세밀히 파악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종과 교육의 정도, 소득 수준이나 정치적 성향, 소비 행태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가령 거리에 픽업 트럭이 많은 곳일수록 공화당 지지층이 높고, 세단이 많은 지역은 민주당 후보에 투표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확률은 각각 82%, 88%로 분석되었다. 2008년 미국 대선과 비교해 보니 실제와 다름 없었다.
선거 때 어느 당, 누구를 찍을 지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통상 설문이나 여론조사를 활용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거리의 자동차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정치권의 대처와 선거 운동 방식에 변화가 예상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그리고 보다 세밀해진 사물인식 기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인간 전문가가 5천만장의 사진을 분석한다면 한 장에 10초씩 잡는다 하더라도 무려 15년이나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불과 2주만에 해냈다.
거리에는 자동차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과 빌딩, 상점 등 다양한 물체가 즐비하다. 이런 사진들이 빅데이터가 되어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분야의 분석과 예측 결과를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구글의 거리 사진 데이터를 통해 도시 개발이나 지역사회의 인종 변화, 공중보건 문제 등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이야 구글 서비스에 의존하지만 앞으로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 하면 거리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인구주택총조사나 여론조사, 각종 통계만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조사 분석 기법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구글 스트리트 뷰나 네이버와 다음의 거리 모습 사진에서 사람의 얼굴이나 자동차 번호판은 보이지 않게 가려진다. 개인정보 침해 우려 때문이다. 그럼에도 손쉬운 정보 수집과 접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에서도 문제가 된 구글의 스마트폰 위치 정보 무단 수집도 같은 경우다. 그런데 빅데이터는 거리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집 안에서도 수많은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노출된다. AI 스피커는 가족들의 습관과 행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사물인터넷과 IP 카메라는 집안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로봇 청소기는 집 내부의 모습을 속속들이 세밀하게 살펴본다. 기술의 진보는 본인의 동의나 인식 여부와 관계 없이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데이터는 정밀한 과학이 되어 편의를 더해주거나 때로 악용되기도 한다.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감당할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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