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위주였던 장례 문화가 화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의 화장 비율은 20년 전에 비해 네 배나 증가해 2015년에 80%를 넘어섰다. 공동묘지를 넓게 공원처럼 꾸며놓은 미국에서도 화장이 매장보다 많아졌고, 2030년에는 그 비율이 70%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묘자리 부족, 비용이나 관리 문제 같은 현실적인 요인이 자리잡고 있지만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드는 디지털 시대의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죽음은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살아온 흔적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는 이런 고정 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생전의 모습은 디지털 공간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굳이 멀리 묘지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장례의 방식과 문화가 변한 것은 이런 시대 흐름을 반영한다. 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죽음의 문화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루리덴’이라는 납골당은 카드를 인식기에 대면 지하 보관소에 있던 유해가 자동으로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올라온다. QR코드가 새겨진 묘비도 판매한다.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고인의 동영상을 볼 수 있고, 관련 웹페이지로 연결된다. 증강현실(AR)과 위성위치시스템(GPS)을 활용한 ‘스폿 메시지(Spot message)’ 앱도 등장했다. 앱에 납골당이나 고인과 관련 있는 특정 장소를 등록해두면 그곳을 지날 때마다 고인이 남긴 생전의 메시지나 사진, 동영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소셜 미디어의 가상 공간은 고인을 죽어서도 만나게 해준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사망할 경우 자신의 계좌를 폐쇄하거나 관리인을 두어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자신의 계좌를 ‘유산 접속(legacy contact)’으로 해 놓으면 사망한 뒤 사이버 추모관으로 운영된다. 고인을 기리는 글과 사진을 남길 수 있고, 고인이 남긴 것들을 내려 받을 수 있으며, 새로운 친구 맺기도 가능하다.
1997년에 개봉된 영화 ‘편지’는 뇌종양으로 숨진 남편이 미리 써놓은 익명의 편지들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차례로 배달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진실이 마지막으로 받은 영상편지는 눈물샘을 자극하고,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만약 영화가 지금 만들어졌다면 소재는 같아도 표현 방식은 달랐을 것 같다. ‘디지털 비욘드(Digital Beyond)’라는 사이트에는 사망 뒤 자신의 디지털 유산과 관련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십 개 회사들의 목록이 나와있다. 많은 업체들이 죽은 뒤에 공개될 메시지나 영상을 남길 수 있게 하고, 특히 사망하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가족과 친구에게 이를 전달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미디어융합 기술연구소(MIT Media Lab)의 컴퓨터 과학자인 호세인 라나마(Hossein Rahnama)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증강 영원성(augmented eternity)’이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죽은 사람의 성격이나 지식, 업적 등 모든 정보를 상세하게 조사해 실제 같은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역사적 유명 인물에 대한 교육 목적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런 기술이 보편화하면 어느 누구라도 가상의 공간에서 살아있는 인물처럼 보여질 수 있게 된다. 홀로그램이나 3d 프린팅 기술로 죽은 이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 했다.
특이점(singularity)의 시대를 예고한 미래학자이자 구글의 기술부문 이사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인공지능이 가져올 낙관적 미래를 예고하며 인간이 기계이고 기계가 인간인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인간이 비생물학적 성격을 띠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너무 과격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죽음의 의미와 해석은 완전히 달라진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의 최종 목적지가 어느 곳이 될 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전방위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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