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자동차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안전 문제다. 기계가 스스로 운전하는 것이 사람의 통찰력이나 인지능력에 의한 운전보다 더 안전한가 하는 기본적인 의문에서부터 충돌이 일어날 경우 누구를 먼저 보호해야 하는 지, 그리고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어떻게 가릴 지 하는 문제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해킹으로 인한 보안사고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도 자율주행차에 빠지지 않고 따라 다니는 문제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안전에 관한 문제 제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사람보다 오로지 차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지금의 교통 질서를 이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또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영리 단체인 미국 도시교통관리협회, NACO(National Urban Traffic Control AssociationS)가 ‘자율주행차와 미래 도심 거리(Automated Vehicles and the Future of City Streets)’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궁극의 목표는 사람 중심이다.
청사진대로 실행되면 보행자가 차도를 무단으로 건너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게 아니다. 교통 경찰의 제지를 받아야 하는 행위도 아니다. 멀리 신호등이 있는 곳까지 힘들게 돌아갈 필요도 없다. 차가 다니는 길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우선이 되어 거리낌없이 지나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여러 차선에서 수많은 차들이 쏜살같이 달리는 지금의 도심 한복판 교통 상황을 생각하면 실현 불가능한, 허황되고 무책임한 탁상공론으로 생각할 수 있다.
NACO의 청사진은 전제 조건을 제시한다. 보행자를 자동으로 감지하면 위험을 초래하지 않게 적절한 거리를 두고 멈추는 자율주행차의 세밀한 안전 장치는 필수적이고, 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20마일(32km)에서 25마일(40km)을 초과해서는 안되며, 특히 도심 한복판에서는 제한 속도를 더 낮출 것을 제안한다. 도시에 다양한 보행로와 자전거 길을 만들고, 저렴한 대중교통 수단을 더욱 확충해 자율주행차가 도심에 몰리지 않게 할 것도 조언한다.
적은 차량으로 더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를 수 있게 하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같은 첨단 기술에 의해 실시간으로 효율적인 차량과 도로관리를 실현함으로써 차가 아닌 시민들에게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하고, 차도를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줄이거나 필요에 따라 융통성 있게 다양한 용도로 운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NACO는 주장한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차도라 하더라도 공원처럼 그냥 공공의 장소로 여겨졌을 뿐이다. 192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무단횡단이 불법으로 간주되기 전까지 도로에서 사람은 차보다 우선했다. 도시가 커지고, 차량이 많아지고, 속도가 빨라지고, 도시계획이 자동차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뉴욕시의 교통 부문 책임자였던 자넷 사딕 칸(Janet Saadiq Khan) NACO 의장은 “우리는 이제 잘못된 실수를 바로잡고, 사람 중심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를 맞았다.”고 말했다.
NACO의 청사진은 정책 당국과 자율주행차 제조사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포드와 우버, 웨이모, 볼보 같은 자율주행차 업체들은 아직 속도 제한 제안에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도심에 차가 몰리지 않게 유도하고 적은 비용으로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교통 흐름을 개편하는 일은 모든 도시가 공통으로 고민하고 공감하는 문제다. 여기에 무단횡단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시스템을 갖추자는 획기적인 제안이 덧붙여졌다. 자율주행차는 2020년까지 천만대 이상이 거리를 누빌 것으로 예상되고, 2억 5천만대 이상은 네트워크로 연결돼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스마트 차량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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