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는 2002년에 개봉한 공상과학 영화다. 미국 워싱턴 DC의 최첨단 치안 시스템은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는 물론 범죄자를 미리 예측해 사전에 제압한다. 범죄를 원천봉쇄하는 이 시스템은 2054년을 배경으로 한다. 지금의 시점에서도 40여년 뒤를 가상한 이야기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이런 미래 세상을 현실로 앞당겼다.
총격 사건이 끊이지 않는 시카고는 범죄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미국의 세번째 도시이지만 살인 사건 발생 건수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합친 것보다 많다. 2017년 상반기에도 총격 사건이 3% 증가했다. 그런데 시카고 일부 지역의 경우 강력 범죄 발생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총격 사건은 39%, 살인 사건도 33% 감소한 것으로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시카고 경찰이 도입한 ‘헌츠랩(HunchLab)’의 범죄 예측 시스템이 성과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 시스템은 과거의 모든 범죄 정보는 물론 지역내 강•절도 사건, 갱단이나 마약 거래, 심지어 날씨나 경제 관련 정보까지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범죄가 발생할 장소와 시간을 미리 알려주는 실시간 디지털 지도를 만든다. 경찰은 이 예측 지도를 바탕으로 특정 지역의 순찰을 강화하고 경찰을 집중 배치해 범죄를 차단한다.
범죄를 예측하고 사전에 막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은 위험 인물을 분류해 집중 감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총격 사건 같은 강력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한 잠재적 범죄자나 연관 인물에 대한 블랙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들의 범죄 실행 위험도를 수치를 매겨 관리한다. 경찰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시카고의 경우 그 대상이 40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활용하는 ‘프레드폴(PredPol)’은 비슷한 방식의 또 다른 범죄 예측 시스템이다. 범죄 예측 범위를150m²로 좁혀 구체성을 높이고, 6개월마다 모든 범죄 패턴을 재학습해 보다 신뢰성있는 예측이 가능하도록 한다. 각종 데이터는 물론 범죄자들의 행동과 심리를 연구한 결과도 이 예측 시스템에 포함된다. 뉴욕과 워싱턴,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덴버 등 미국 전역의 대도시에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이런 범죄 예측 방식을 부분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범죄를 예방하는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보가 수집되고 통합 관리되면서 자칫 무고한 잠재적 범죄자를 양산하고 개인 사생활 노출이라는 부작용의 우려가 높다. 범죄 가능성만으로 특정 인물을 관리하는 시카고 경찰의 블랙리스트는 그 명단이 어떻게 작성되고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공개되지 않았다. 흑인 범죄 발생 건수가 많았던 과거 데이터가 범죄 예측 시스템에 적용돼 인종 차별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군사 작전에 쓰이던 기술도 범죄 예측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미국 CIA가 초기 투자에 참여했던 ‘팰런티어(Palantir)’라는 업체는 방대한 데이터와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범죄 가능성을 샅샅이 추적한다. 알 카에다 조직을 이끌던 오사마 빈 라덴의 동태를 분석하고, 이라크의 거리에 매설된 폭탄의 패턴을 찾아내던 기술이 민간 범죄 소탕작전에 동원된 것이다. 베일에 휩싸인 이 회사의 범죄예측 기술의 구체적인 내용과 얼마나 많은 도시들이 이 시스템을 활용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업체는 미 국토안보부와 NSA(국가안전보장국), FBI, 해병대, 공군, 특수전사령부 등과 함께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 기관의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T 기술로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범죄 예측 시스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감시 카메라와 얼굴 인식, 보행 패턴 분석, 군중 속에서의 개인 식별 등 인공지능을 활용한 모든 첨단 기술이 총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이 통제되고 자국민에 대한 감시가 일상화 한 나라에서 첨단 과학기술의 활용이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유일한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강력 범죄와 흉악 범죄를 척결하려는 노력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보장하기 위한 모두의 염원이다. 범죄를 사전에 파악하고 제압하는 것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제공하는 또 다른 선물이다. 하지만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정확한 범죄 예측은 사전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철저한 감시 사회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수많은 감시 카메라가 거리 곳곳에 깔려있고, 하루하루의 디지털 흔적이 사라지지 않은 채 어딘가에 비밀을 간직한채 남아있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이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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