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진공청소기 룸바(Roomba)를 생산하는 미국의 아이로봇(iRobot) 주가는 2017년 6월 중순을 기준으로 1년 전에 비해 세 배 가까이 급등했다. 수많은 경쟁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고공 행진을 벌인 이유는 아이로봇이 새로운 사업 진출을 암시하면서부터다. 고성능 카메라와 각종 센서를 장착한 로봇 청소기가 집안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먼지만 흡수하는 게 아니라 정보도 함께 빨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아이로봇의 최고 경영자인 콜린 앵글(Colin Angle)은 2017년 7월 로이터(Reuters)와의 인터뷰에서 “집안의 모든 정보를 담은 지도가 있다면 완벽한 스마트홈의 생태계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룸바의 시장 점유율은 88%의 독점적인 수준으로 대다수의 가정이 사용하고 있다. 아이로봇이 룸바에서 수집한 집안 정보로 데이터 장사를 하겠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아이로봇의 최신형 룸바는 카메라와 각종 센서를 통해 1초에 60번 꼴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식 능력을 갖추고 세밀한 집안 내부 지도를 그려낸다. 물론 완벽한 청소를 위한 것이지만 거실과 주방, 각 방의 형태나 가구 배치 등 집안 내부를 속속들이 정확하게 파악할 있는 평면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원격 조정도 가능하다.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 앱으로 청소 명령을 내리고 작업 진행 상황을 점검할 수 있다. 제조업체가 집안 정보를 다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존과 애플, 구글 등 글로벌 IT 공룡들이 AI 스피커를 전면에 내세우고 치열한 판매 경쟁에 나선 궁극적인 목적은 빅데이터에 있다. 집안의 음성정보를 선점해 스마트홈과 사물인터넷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그런데 로봇 청소기는 이미 대부분의 가정에서 한 대씩 가지고 있고, 집안을 손바닥 보듯이 파악하고 있다. 이보다 더 좋은 정보는 없을 것이다. IT 빅3가 주택의 내부 지도 확보 경쟁에 나서고, 아예 청소기 업체를 인수게 될 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로봇 청소기가 넘겨주는 정보는 광고업체들에게 보물단지나 마찬가지다. 실시간 마케팅이 가능하다. 가족이 인터넷이나 페이스북을 열 때마다 거실의 낡은 가구를 대신할 새 가구를 추천하고, 아이의 장난감을 보고 연령에 맞는 다른 장난감이나 그림책을 권할 수 있다. 로봇 청소기에 비치는 집안의 모습은 재력까지 파악할 수 있어 가정 형편에 맞는 적정 가격의 맞춤형 브랜드를 제시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로봇 청소기의 정보는 집안의 다른 스마트 기기와 연계돼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은 물론 가정의 생활 패턴까지 추정할 수 있게 된다. 부동산 중개업자나 보험회사, 심지어는 금고 위치를 알고 싶어하는 밤손님에 이르기까지 청소기가 수집한 정보는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는 로봇 청소기 업체의 데이터 장사에 최대 걸림돌은 고객들의 반발이다. 자기 집 내부 정보가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생활 침해 우려도 높다. 이미 소비자 단체가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아이로봇은 와이파이에 연결하지 않고 로봇 청소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고객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법조문처럼 길고, 알아보기 힘들게 작은 글씨로 쓰여진 소비자 약관을 제대로 읽어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파격적인 청소기 가격으로 타협할 수도 있다. 주변의 친숙한 생활 용품이 편의 제공의 대가로 정보를 요구하는 세상이다. 청소기 제조업체가 데이터 업체로 변할 수도 있다. 사생활 보호의 기준과 잣대가 점점 모호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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