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오늘(2016.3.9)부터 1주일에 걸쳐 5차례 펼쳐지게 됩니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사의 최고경영자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는 입국 인터뷰에서 알파고의 승률은 50:50이라며, 정확한 승률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승부에 대해서는 자신 있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국내의 전문가들도 상반된 예측을 하고 있어서 누구도 쉽사리 승부의 결과를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국을 앞두고 어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세돌 9단은, 지난 2월 사전 기자회견에서 보인 자신감 대신 “조금 긴장은 해야 할 것 같다”며 “5대0으로 승리하는 확률까지는 아닌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승부보다 알파고가 지난 해 판 후이 2단과의 대전 이후로 더 성장한 모습을 기대하면서 “인류의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번 대국을 직접 참관하기 위해 방한한 에릭 슈미트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 회장은 “결과에 상관없이 인류의 커다란 승리가 될 것”이라며 “컴퓨터 과학자로서 1960년대에 이런 이벤트를 꿈꿨지만 30년 동안 인공지능 분야는 추운 겨울을 보냈다”며, “앞으로 수백 개의 언어를 전화기로 동시 통역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사실, 승패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위의 동료들과 누가 이길 것인가를 두고 간단한 내기를 하는 것도 조금은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에릭 슈미트 회장의 말대로 결과는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던져야할 질문은 그것이 에릭 슈미트 회장의 말처럼 ‘인류의 커다란 승리가 될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어제(8일)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좌)와 이세돌 9단(우)의 모습, 출처: 한국기원>

<어제(8일)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좌)와 이세돌 9단(우)의 모습, 출처: 한국기원>

 

 인공지능은 최근 수년간 급속도로 발전

에릭 슈미트 회장의 말대로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는 한 동안 위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아마 ‘딥러닝’이라 불리는 방법이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대국은 이뤄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딥러닝’의 부활은 기존 ‘인공지능’이 갖고 있던 기술적 약점을 극복한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빅데이터의 수집이 용이해지고, 컴퓨터의 성능이 급속도로 향상된 것이 크게 작용을 했습니다. 연산속도만을 기준으로 삼자면 현재 상급의 PC가 2002년의 슈퍼컴퓨터와 비슷할 정도이니 그간 컴퓨터의 발전속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빅데이터의 확보와 컴퓨터 연산속도의 증가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는 ‘딥러닝’과 함께 오늘날 인공지능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번 대국에 참여하는 인공지능 ‘알파고’만 하더라도 2900만 개의 기보(碁譜)를 이용해 학습을 했고, 이번 대결을 위해서는 하루 3만회의 연습대국(자체 대국 포함)을 경험해왔습니다. 앞으로 컴퓨터의 성능이 올라가고 더 많은 데이터로 훈련을 한다면, 조만간 최고의 인공지능이 최고의 바둑 고수를 능가하는 일은 놀랍지도 않을 것입니다. 마치 지금의 체스처럼 말입니다. 체스 챔피언이 인공지능 컴퓨터에 패한 지 20여년 가까이 지나고 있는 지금, 체스계에서는 컴퓨터에게 체스를 배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도구는 언제나 인간의 힘을 능가해 왔다

유사 이래로 인류가 만들어 낸 도구는 언제나 인간의 힘을 능가해 왔습니다. 사용목적에 있어서인간의 힘을 능가하지 못하는 도구는 의미가 없는 것이겠죠. 따라서 인공지능이 특정한 사고(思考)형식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인공지능은 여타의 도구와는 다른 면이 있기는 합니다. SF영화나 소설을 통해 우리가 익숙해져 있듯이 인공지능이 ‘자아를 인식한 뒤 스스로 자아보존욕구를 가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때 우리는 생존의 차원에서 경쟁해야 하는 하나의 종(種)을 새롭게 만들어 낸 셈이 됩니다. 지금껏 같은 종의 위협을 제외하고는 일상에 있어서 다른 생물학적 종의 위협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인류에겐 위협적인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생물들에 비해 육체적으로 약한 인류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믿는 ‘생각’이란 측면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무엇인가가 나타난다는 것은 불쾌할뿐더러 본질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또한 고의적으로 방향을 설정하더라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도구를 사용한 결과

그렇다면, 정말 알파고 관계자들의 말처럼 이러한 인공지능이 ‘인류의 승리’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되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도구로만 남을까요?

올해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의 중심 주제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이었습니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대두로 인한 제조업의 혁신과 새로운 지식기반 산업발달의 영향력을 두고 마이크로소프트사(社)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각각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수년 전부터 UN산하 기관이나 각국의 경제연구소에서는 앞다투어 일자리의 감소를 예측해왔습니다. 미국과 독일 등을 위시한 선진국에서는 제조업을 새로이 정의한 다음 최소한의 인력을 이용하는 구조로 재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한국사회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논의될 주제 중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인공지능’이라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술의 진보에 따른 성과물이 그대로 인류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선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일 뿐,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의 ‘소외’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요? 달리 말하면,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후폭풍-인간이 더 이상 ‘도구’로도 쓰이지 못하는-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지내도 되는 것일까요?

<데미스 하사비스(왼쪽)CEO, 이세돌 9단(가운데),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오른쪽)의 모습, 출처: 한국기원>

<데미스 하사비스(왼쪽)CEO, 이세돌 9단(가운데),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오른쪽)의 모습, 출처: 한국기원>

 

열리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

그리스 신화에서 최초의 여자 ‘판도라’는 제우스가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하면서 준 항아리를 호기심 때문에 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항아리 안에서 인간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는 모든 것들이 쏟어져 나왔습니다. 놀란 판도라는 급하게 두껑을 닫았습니다. 항아리 맨 밑에 있던 ‘희망’을 남겨둔 채로…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복잡한 게임, 그래서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그 게임을 또 기계와 승부하면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게임의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승부를 있게 한 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지금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있습니다. 에릭 슈미트와 기술 신봉자들이 꿈꾸는 ‘희망’, 항아리의 밑바닥에 있는 그 ‘희망’만 나오게 하고 고통은 가두어 둘 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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