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아마존은 인공지능 스피커 알렉사(Alexa)를 시장에 선 보였다. 이 인공지능은 어린아이의 육아 수단으로 만든 것인데 그 편리함을 맛본 부모들의 요청으로 불과 3년 만에 미국 인구의 10%가 사용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알렉사 외에도 아이들을 상대로 상품화된 인공지능은 계속 나오고 있다. 장난감업체 마텔(Mattel)은 베이비시터, 아마존은 에코(Echo), 국내의 SK텔레콤은 동화구연 방면에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 (인공지능 스피커와 새로운 육아법, 12. 5. 소요 협동조합 글 참조)

영국의 인공지능 드라마 <휴먼스>(HUMANS, 2015)의 한 장면은 이렇다.

소피~, 엄마와 동화를 읽을 시간이지?

싫어요. 난 애니타가 읽어주는 것이 좋아요.

음, 그건 엄마가 하던 일인데?

애니타가 읽어주는게 더 좋아요. 엄마, 애니타는 조급하지고 않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요.

가정용 인공지능 애니타를 구입한 아빠 조 호킨스의 딸 소피 호킨스는 밤이면 엄마(로라 호킨스)와 침대에서 동화책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피는 엄마를 거부하며 대놓고 말한다. “엄마, 애니타가 더 잘 읽어줘요.” 엄마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인공지능 애니타는 소피의 손을 잡고 유유히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은 어떤 존재인가?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인가? 스티븐 킹(Stephen Edwin King, 1947~)은 “아이들은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에 열렬히 반응하고 어른은 죽어가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존재”라고 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아이들은 자기말을 잘 들어주는 움직이는 기계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로봇이어도 상관없다.

시대를 초월해서 엄마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아이는 아침부터 밤까지 엄마를 찾는 존재였고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두 가지 일을 먼저했다. 첫번째는 엄마!하고 부르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냉장고 문을 여는 일이었다. 엄마가 부재하고 냉장고 안에 맛았는 케익이 없음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엄마를 부르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것이 아이들이다. 아빠 보다는 왜 엄마를 찾았을까? 굳이 과학적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엄마의 배속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탯줄을 통해 수개월 동안 엄마와 교감하고 엄마의 감정을 흡수하여 몸과 뇌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엄마의 존재는 ‘절대적’ 이라는 분석이 있다.(이정숙, 좋은 엄마로 생각 리셋, 나비, 2012) 엄마의 감정, 정서, 취미, 직업, 가치관, 관계,  삶의 만족도, 성취감 등은 아이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신이 무엇인가?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중독되는 대상이다. 하루의 중심이자 리드하는 본질이다. 하지만 이제 아이에게 신의 존재는 엄마가 아니다. 중심의 대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잠에서  깬 아이들,  밖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더이상 엄마를 부르지 않는다.  

엄마를 대신해주는 인공지능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기서 말하는 아이란 뇌와 정서, 습관이 형성되는 15세 이전의 아이들을 말한다.) 인공지능에게 아이를 뺏긴 엄마는 어떻게 해야할까?  책 <인공지능 VS 인간지능 두뇌 사용 설명서: 미래 직업을 위한 바벨 전략>(고리들 저, 권상희 그림., 행운출판사, 2015)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만약 아이가 15세가 되기 이전까지 엄마가 자신의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한다면, 가령 자신의 취미 생활을 한다든지, 직장생활을 통하여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는 시간을 가진다면, 그런 엄마를 아이에게 보여주며 산다면 아이는 좋은 뇌와 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무언가를 추구하며 자존감이 높아가는 것을 보면 스스로도 독립적인 기질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캐롤 K. 트르먼의 <감정인간>(레디 셋고, 2015)을  보면 엄마의 여유 있는 감정상태와 태아때부터 DNA에 감정에너지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또한 엄마의 일상과 가치관이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게 해준다.

해발 4천미터 고원, 티베트에도 아이들은 산다. 티베트 아이들은 독립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다. 왜 일까? 엄마들이 바쁘기 때문이다. 엄마는 생존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서 움직인다. 아이는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엄마를 보면서 하루종일 자신만의 볼(놀)거리를 스스로 찾는다. 예를 들어 야크 똥을 줍는다든지, 물을 길러 간다든지, 양을 몰고 초원을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돌을 던지고 구름과 별을 보면서 노는 것이다. (의외지만 게임도 한다.)그들에게 놀이와 생존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놀면서 먹거리를 찾고 그 안에서 서로 독립된 생활을 한다. 엄마와 아빠와 아이는 저녁이 되면 집으로 모여서 밥을 같이 먹고 하루를 이야기한다. 이때 엄마는 아이에게 하루종일 ‘무얼’ 했느냐고 묻지 않는다. 대신 ‘뭐하며 놀았느냐’고  묻는다.  

티베트는 여성이 모든 것을 주도한다. 생계, 남편, 거주지, 가족구성, 관계, 종교까지 모두 것을 여성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한다. 그래서일까. 티베트의 여자와 아이들은 집중력이 좋다. 하루를 자연과 함께 동행한다. 타인으로부터 조정 당하고 간섭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짜여진 틀과 관계로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그들 삶의 공간이 야생이기 때문이다. 넓고 크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은 예측하기 힘들고 위험하다. 그래서 티베트인들은 상상력과 생존능력이 평지의 사람들보다 탁월하다.  

인공지능이 가정으로 들어와도 엄마는 여전히 중요하다. 아이는 로봇이 잉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엄마는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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