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25킬로그램이 나가면 뭐 사줄꺼야? (목욕탕 구석의 몸무게 저울에 깡총 뛰어올라 고개를 숙이고 발가락에 힘을 주며 애가 묻는다.)
임마, 니 몸무게 느는건대 내가 뭘해줘? 웃긴 놈이네. (몸무게를 확인하고 내려온 애가 소원을 담은 눈망울을 하고 나를 올려다본다.)
나 살이 좀 찌면 엄마, 아빠가 좋잖아? 그러니까 선물해 주어야지 않아? 내가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었으니까 말야. (물이 똑.똑. 떨어지는 자신의 머리를 말려달라고 드라이기를 나에게 내밀면서 애는 힘주어 말한다.)
거참 이 놈이, 뭐 갖고 싶은데? 아빠 알잖아 그거? 뭐? 그거~. (애는 내 배꼽에 손가락을 대고 무언가를 쓴다.)
간지러워. 이러지마. 그거~ 알았어. 야호, 그럼 아빠 나 나중에 28킬로그램 나가면 그땐 뭐 사줄꺼야?.
아이는 그날 저녁부터 밥을 우겨넣는다. 반찬도 먹지 않고 밥만 퍼서 입에 쑤셔넣는다. 그러면서 나를 계속 쳐다 본다. 아빠, 알지? 하는 표정으로. 그래. 알아. 천천히 먹어. 꼭꼭 씹으면서. 나도 표정으로 대꾸한다. 아이는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었던 장난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걸 가지고 친구들 앞에서 폼 잡고 싶은 것 같다. 밥을 우겨 넣으며 아이는 그 장난감을 이미 손에 쥔 모습을 상상하는 것 같다. 얼굴이 밝다.
누가 꿈을 꾸는가? 결핍된 존재들이다. 그들은 밤마다 자기전 두 손을 가슴에 끌어올려 기도를 하기도 하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기도하는 자는 절망하고, 부족하고, 온전하지 않는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매일 출퇴근 하는 직업이 아닌 사람들, 조직과 기관에서 동료들과 밥을 먹지 않는 사람들,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 영화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를 찾아다니는 사람들, 자신의 춤과 노래를 찍어 돌리는 사람들. 그들은 거의 매일 기도를 하거나 자신만의 진언을 중얼거릴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이미 정해진 자신만의 현실세계에 만족하지 않고 꿈꾸기를 통해 얻어지는 또 하나의 세계를 품은 사람들이다.
로봇은 꿈을 꿀 수 있는가. 내일은 무엇이 생기면 좋겠다고 무릎꿇고 기도 수 있는가. 무엇을 소유하겠다고 빌거나 기도를 하는 로봇을 본적 있는가? 로봇은 개나 고양이 꽃이나 음악 지구와 우주에 대해 인간처럼 관심이 없다. 왜그럴까? 로봇은 그것에 대한 결핍과 욕망을 별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들이 없어도 자신들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꽃과 음악이 없어도 자신들은 결핍되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욕망과 호기심)있다면 로봇들에게 그런 표정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표정은 ‘자의식’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있는 생명체만이 표정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얼굴표정이 다양한 이유는 서로 다른 자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에게서 결핍과 반성의 얼굴표정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욕망이 없으면 존재에 대한 결핍감이 생길까? 바꿔 말하면 존재에 대한 결핍감이야말로 욕망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결핍이 큰 사람일수록 욕망도 소망도 크다는 말을, 인간의 경우 결핍에 대한 감각이 예민할수록 욕망에 대해서도 예민하다는 말을 어느 작가가 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에는 밤을 기다리고, 밤에되면 아침을 기다리는 인간처럼. 포크로 통통한 생선의 등을 찍으며 점심을 먹으면서도 그럼, 오늘 저녁에는 뭘 먹지? 하는게 인간이다. 그러면서도 완벽한 충족감은 느끼지 못하는 동물이 인간이다. 어떤것이 주어지더라도 인간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핍과 욕망. 그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건 8살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벌거벗고도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고 애교를 부리고 전략을 짠다.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빠라는 것을 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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