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2015)는 오큘러스스토리스튜디오(Oculus Story Studio)가 <로스트(Lost)>(2015)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든 VR 애니메이션이다. 친구를 껴안기 좋아하는 고슴도치 헨리가 가시로 뒤덮여있다는 육체적 조건을 극복하고 친구를 갖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헨리>는 모션 트래킹을 지원하는 오큘러스리프트 시스템을 기준으로 제작되었다. 즉, 이용자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렌더링에 반영되므로, 이용자에 따라 작품을 체험한 결과가 다르게 구현된다.

이 작품은 VR 스토리텔링에서 상호작용성과 시점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상호작용성으로 인해 이용자와 캐릭터의 감정적 거리감이 달라진다. 제작진인 사슈카 언셀드는 <헨리>를 본디 슬랩스틱 코미디로 만들고자 했으나, 웃음보다는 슬픔의 정서가 상대적으로 부각되었다고 밝힌다. 영화와 달리 상호작용성을 지닌 VR 콘텐츠에서는 이용자가 스토리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캐릭터에 더 깊이 감정이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셀드의 언급은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가까이서(in close-up)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in long-shot) 보면 희극”이라고 말한 것과 상통한다. 웃음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와 상황에 대해 거리감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VR 이용자는 프레임이라는 ‘창’ 밖에서 가상세계를 엿보는 대신 가상세계 안으로 ‘문턱’을 넘어간다. 이에 따라, VR 스토리텔링에서 스토리의 세계와 캐릭터 및 이용자의 감정적 거리감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는 시점의 설정과 연동하여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더 나아가, <헨리>는 상호작용성과 스토리텔링이 정합적으로 맞물리지 못할 경우, 스토리의 세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이용자는 자신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헨리의 집 안에 ‘유령처럼’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감정선이 고조되는 장면에서 헨리는 이용자와 종종 시선을 마주친다. 그런 순간에는 헨리의 눈동자가 이용자의 움직임을 따라 굴러가기까지 한다. 이용자는 비로소 자신이 1인칭 관찰자로 가상세계에 속해 있으며, 자신의 행동이 가상의 캐릭터에게 영향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제는 헨리가 홀로 외로움을 타는 고슴도치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제작진의 상당수가 인정하듯, 헨리가 이용자의 존재를 의식한다면 외로워할 필요가 없으니 캐릭터의 정서와 시점의 설정이 서로 모순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헨리>의 사례는 VR 스토리텔링의 상호작용성과 시점에 대해 여러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VR이라는 새로운 예술형식의 가능성이 한창 모색되는 현 국면에서, 답의 중요성이 질문의 중요성을 능가하기란 어려울지 모른다. VR 스토리텔링에 대해 답보다 질문을 구하는 여정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VR(가상현실)은 너무도 새로운 매체여서, 우리는 마치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붓도 디자인해야하는 상황이다.” VR 콘텐츠 제작사인 펜로즈 스튜디오의 유진 정 감독이 한 말이다. 영화의 탄생 이후 한세기 남짓 쌓인 영상문법은 VR 매체의 부상으로 인해 패러다임 변화의 압박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VR 콘텐츠에 대한 논의는 산업적, 기술적 측면에 다분히 치중되어 있다. 이 칼럼은 VR 스토리텔링의 핵심적 문제들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소개하여 VR 콘텐츠에 대한 논의에 균형추를 달아보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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