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하고 말하면
아니라고 말하라.
사람들이 ‘우리 만나야 한다’고 말하면
‘왜?’라고 반문하라.
누군가 식료품 가게에서 너를 알아보면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양배추가 되어라.
그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한
어떤 것을 기억하려는 것일 뿐이다.
<사라짐의 기술 >중에서
빛을 쫓아가는 시대, 눈(看)이 황홀한 시대, 혀(舌)가 대접받는 시대다. 이건 디지털 시대의 특징이다. 눈을 따라가는 시대가 되었으니 상대적으로 귀(耳)은 홀대받는 시대이기도 하다.
얼마전 ‘소리(聲)’의 중요성을 간파한 예능 프로그램이 있어 보면서 놀란적이 있다. 먹는것과 여행 아니면 사생활 훔쳐보기로 도배된 오늘날 예능 프로그램에서 처음보는 신선한 프로그램이었다. <숲속 작은 집>(2018, tvN방송)이다. 소지섭, 박신혜라는 유명한 배우가 인적이 드는 숲속 작은 집에서 제한된 식수를 가지고 혼자 일상을 보낸다는 이야기, 한 마디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해보는 관찰 프로그램이라고 할까? 기획과 제작진들을 찾아보니 역시 국내 예능을 판도를 휘어잡고 있는 나영석 피디와 그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나는 첫회를 보는 순간 “음, 이건 나는 마지막까지 본방 사수하겠지만 결국 망하겠군?” 했다. 천하의 예능천재 나영석이라도 이건 안될걸! 하고 예감했다. 나의 예감은 적중한 것 같다. 시청률이 폭망했다고 한다. 나영석 피디의 말을 인용하면 주연 배우들에게 얼굴을 못 들정도로 민망한 시청률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와 그의 사단(작가와 피디들)들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예능은 거의 실패하지 않았다.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윤식당>, <알뜰신잡>등은 그야말로 사람들이 기다려 보는 프로그램들이다. 그런데 이런 프로들은 대중의 관심과 박수를 받고 <숲 속 작은집>은 왜 외면을 받았을까?
나 피디가 기획하여 초대박 흥행을 거둔 예능과 그 비슷한 프로그램들은 몇가지 공통된 코드를 가지고 있다. 친구, 음식, 여행, 유적지관람, 수다(이야기),자연, 동물(염소/개/고양이) 등이다. 먹고 마시고 풍경보면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것, 이건 인간이라는 동물이 늘 하고 싶은 짓이다. 즉 내가 해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것, 그동안 그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거의 모두 이 흥행공식을 적용해왔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도 저렇게 해봤으면! 하는 동경과 부러움을 주는 것! 저 사람들 재미있어 보이는데? 나도 한번 저렇게? 하는 시청자들을 많이 확보하는것, 그게 바로 시청률이다.
그럼 <숲 속 작은집>은 왜 (폭)망했는가? 그동안 해왔던 성공적인 프로그램들과 정 반대의 요소를 썼기 때문이다. 정적이고 혼자이고 화려하지 않고 밝은 빛이 없고 문명이 만들어낸 편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흙, 물, 숲, 나무, 하늘, 동물, 벌레, 별, 달 만이 있을 뿐이다. 아껴먹고 일찍 자야한다. 스스로 땔감을 만들고 불을 지펴야 한다. 보고 있으면 스르르 잠이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망한(?) 프로그램은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다. 오늘날 인간의 사생활과 욕망만 건드리는 프로그램들 속에서 저런 프로그램 하나 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숲속 나의 집>을 최근 몇년간 본 예능프로그램 중에 최고로 친다. 왜 그런가 하면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문명의 시끄러운 소음이 아니라 소리말이다. 가령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출연자들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로부터, 바람소리, 비소리, 물소리, 밥 짓는 소리, 책 보는 소리, 벌레 소리, 침 넘어가는 소리 등등 사방에 소리가 가득하다. 인간에게 소리가 왜 중요한지는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확실한건, 오늘날 우리는 소리를 잃어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보는 것과 혀에서 만족과 쾌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숲 속 작은집>을 디지털 시대 부모와 아이들이 꼭 봐야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공간과 시간, 인간과 자연, 낮과 밤, 빛과 어둠, 여유와 생각, 잠과 책, 소리와 냄새가 있다. 탐욕적이고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예능의 시대에서 나는 다시 <숲속 작은집 2>를 기대해본다. 쾌락적인 예능의 정글에서 졸음이 살살 오는 프로그램 하나 쯤은 있어야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결국 과학과 기술이 발달할수록 비물질적인 것에서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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