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AI 논의는 종종 ‘수업에 AI를 넣는 방법’에서 멈춥니다. 하지만 유라시아 리뷰Eurasia Review가 소개한 연구는 그 질문이 너무 늦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AI는 교육을 돕는 보조 엔진이 아니라,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학교의 운영 규칙—고정 교과, 학년제, 표준화 시험—을 더 이상 자연스럽게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충격이기 때문입니다. 용 자오Yong Zhao는 이를 ‘학교의 문법’이라 부르고, 그 문법을 끝내는 수준의 재설계를 주장합니다. 

자오의 문제의식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AI를 “기존 교실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도구”로 다루는 동안, 정작 학교가 ‘학교’로 작동하는 기본 전제는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논문은 현재의 논의가 대체로 전통적 학교 배열을 그대로 둔 채, 커리큘럼과 기준, 연령별 분반, 과목 분절, 표준화 평가, 교사 중심 교실을 고정값으로 놓고 AI를 ‘교사가 수업에 끼워 넣는 방식’에 머문다고 지적합니다. 효율은 높아질지 몰라도, 그것만으로는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는 경고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불편한 사실 하나를 인정하게 됩니다. ‘개혁’이라는 말이 반복되어도 학교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학교가 지식 전달 시스템이기 이전에 사회의 선발과 분류를 담당하는 장치였기 때문입니다. 표준화된 커리큘럼과 표준화 시험은 교육의 도구인 동시에 사회적 신뢰의 장치였습니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지식 검색과 서술, 요약, 문제 풀이의 비용을 급격히 떨어뜨립니다. 결과적으로 학교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같은 내용을 같은 속도로 가르치고 같은 잣대로 평가한다”는 문법은, 교육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 자명한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상태로 들어갑니다. 유라시아 리뷰가 이 연구를 “한 시대의 끝”으로 소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오가 특히 날카롭게 겨누는 대상은 ‘개인화 학습’이라는 친숙한 구호입니다. 그는 많은 개인화가 사실상 “하나의 목표, 하나의 경로, 하나의 기대치를 모든 학생에게 적용하는” 전통적 원리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학생이 같은 커리큘럼을 조금 빠르게 혹은 조금 느리게 통과하도록 돕는 수준에 머문다고 말합니다. 이름은 개인화지만 본질은 ‘미세 조정된 획일화’라는 뜻입니다. 

그가 제안하는 개인화는 방향이 다릅니다. 교육의 목표를 ‘평균으로 끌어올리기’가 아니라, 각 학생이 가진 강점과 흥미를 바탕으로 “자기 방식의 고유한 탁월함”을 형성하도록 돕는 것으로 다시 잡습니다. 평균적 역량의 반복은 기술로 대체되기 쉽고, 그래서 앞으로의 시대에는 ‘평균’이 아니라 ‘고유함’이 생존과 기여의 기반이 된다는 진단이 뒤따릅니다. 이 관점에서 AI는 학생을 같은 틀에 더 잘 끼워 맞추는 도구가 아니라, 각자의 고유함을 확장하는 증폭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가능성은 학교가 “하나의 프로그램, 하나의 기대, 하나의 경로”라는 문법을 내려놓을 때에만 현실이 됩니다. 

여기서 교육의 초점은 ‘정답’에서 ‘가치’로 이동합니다. 자오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조차도 AI 시대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탐구와 협업을 강화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미리 정해진 동일 커리큘럼을 숙달’하는 전통 설계 안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그가 요구하는 전환은 더 근본적입니다. 학생에게 필요한 첫 과제는 “풀어야 할 문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풀 가치가 있는 문제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사회에 들어가 마주치는 것은 시험 문제가 아니라,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불편과 결핍이며, 그 결핍을 해결해 타인에게 가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개인의 고유함이 작동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전환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AI가 ‘답’의 생산을 가속할수록 인간에게 남는 경쟁력은 ‘무엇을 답할 가치가 있는가’를 가려내는 능력으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기준을 세우고,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윤리적 비용을 따지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습니다. 자오가 교사의 역할을 지식 전달자에서 멘토·코치·퍼실리테이터로 재정의하자고 말하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과 연결됩니다. 교사는 더 이상 ‘정답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발견한 문제를 더 정교하게 다듬고, 왜 그것이 중요한지,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지는지 묻는 사람으로 이동합니다. 

평가 역시 같은 방향으로 재배치됩니다. 유라시아 리뷰는 자오가 표준화 시험을 AI 기반의 연속적이고 역량(competency) 중심의 평가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고 전합니다.  이는 단순히 시험을 컴퓨터로 바꾸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학습 경로가 다양해질수록 동일한 시험으로 ‘공정’을 보장하는 방식은 오히려 학습을 왜곡합니다. 반대로, 개인의 성장과 성취를 실제 맥락에서 추적하는 평가 체계가 가능해질수록, 평가의 초점은 점수에서 포트폴리오, 산출물, 기여, 그리고 반복적 개선으로 옮겨갑니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붙습니다. 평가가 AI로 ‘자동화’될수록, 그 기준과 근거는 더 투명해야 하고, 오류와 편향의 책임 구조는 더 분명해야 합니다.

자오가 던지는 가장 도발적인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커리큘럼이 필요한가?” 그는 AI를 전통 교실에 보조적으로 쓰는 수준은 준비 시간을 줄이고 숙제를 돕는 데는 유용하지만 “교육을 진정으로 변혁하지는 못한다”고 말합니다. AI는 단순한 검색 엔진이 아니라 올바른 프롬프트와 반복, 인간의 안내가 필요한 조력자이며, 윤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늘 적절한 답을 보장하지도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AI 시대의 교육은 ‘정답을 외우는 교육’이 아니라, AI의 한계까지 이해한 상태에서 지식을 찾아 쓰고, 문제를 정의하고, 타인을 위해 가치를 만드는 쪽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설계의 언어가 바로 “문제의 발견과 해결을 중심으로 한 개인화”라고 그는 결론짓습니다. 

이 논의를 한국의 풍경에 비추면, 인사이트는 더 선명해집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표준화 시험이 만들어내는 ‘측정 가능한 공정’ 위에 교육의 질서와 이동의 사다리를 세워 왔습니다. 그러나 AI가 답안과 글쓰기를 손쉽게 생산하는 시대에, 시험이 측정하던 능력의 상당 부분은 의미가 바뀝니다. 그때 남는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표준화와 감시를 강화해, 학생과 교사를 ‘동일 기준’으로 다시 묶어두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오가 제안하듯, 학교가 강요하던 평균의 기준을 완화하고, 각자의 강점이 사회적 가치로 연결되는 경로를 제도적으로 설계하는 길입니다. 첫 번째는 단기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으나, AI가 만드는 변화를 ‘통제’로만 다루는 순간 교육은 더 쉽게 피로해질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어렵고 느리지만, 교육이 다시 ‘형성’의 제도로 돌아갈 가능성을 엽니다.

결국 이 연구가 던지는 통찰은 기술 처방이 아닙니다. “AI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라는 교육의 헌법을 다시 쓰라는 요청입니다. 학교의 문법은 오래된 습관이 아니라 사회적 계약이었습니다. 그 계약이 흔들리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앱이 아니라, 더 분명한 목적입니다. AI는 그 목적을 대신 정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목적을 회피할수록, 학교는 더 빠르게 낡아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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