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이 일상화된 교실, 그러나 학생들은 ‘생각할 힘이 줄었다’고 느낀다.
영국의 중고등학생 상당수가 인공지능(AI)을 학교 과제에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그 결과로 ‘학습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불안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옥스퍼드대 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 OUP)가 13~18세 학생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 응답자의 62%가 “AI가 내 공부 능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AI가 학생들의 학습 과정에 미치는 실제 심리적·인지적 영향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전국 단위 연구다.
“AI 없이는 과제 못 한다”…그러나 절반 이상은 ‘역효과’ 체감
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98%가 이미 AI를 과제 수행에 활용 중이며, 완전히 사용하지 않는 비율은 고작 2%에 그쳤다. AI는 주로 글쓰기 초안 작성, 요약, 번역, 수학 문제 풀이 등에 활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10명 중 6명 이상이 “AI 덕분에 과제가 쉬워진 만큼,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 25%는 “AI가 답을 너무 쉽게 제시해 사고력과 노력이 약해졌다”고 말했고,
- 12%는 “창의적 사고가 줄었다”고 답했다.
- 일부 학생은 “문제를 푸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복사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한 16세 여학생은 “AI는 나보다 똑똑하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내 머리는 점점 게을러진다”고 말했다.
“AI가 친구보다 더 공평하지 않다”…공정성에 대한 불안
AI 활용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공정성 문제도 떠올랐다. 많은 학생이 “클래스메이트가 몰래 AI를 쓰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고 응답했다.
특히 상위권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일수록 AI 사용이 성적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는 이미 한국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감지되는 현상이다 — AI로 요약한 리포트와 인간이 쓴 글의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AI를 신뢰해도 될까요?” — 학생들이 바라는 건 ‘AI 리터러시 교육’
조사 결과는 학생들이 단순히 AI를 금지하거나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점을 드러냈다.
응답자 다수는 “AI가 틀린 정보를 줄 때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배우고 싶다”고 답했다.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AI 교육 허브(AI Education Hub)’를 새로 구축해 교사들이 AI 활용 지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OUP의 교육 담당 디렉터 헬렌 프리먼Helen Freeman은 “AI가 학습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며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AI를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우리 교육에 주는 경고: ‘AI 금지’보다 ‘AI 이해’
영국의 이 조사 결과는 우리 교육계에도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미 한국에서도 ChatGPT, Copilot, Perplexity 등 AI 도구의 학교 내 사용이 확산되고 있지만, 학생들이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거나 학습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체계는 미비한 실정이다.
‘AI 금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AI를 통해 사고력·창의력·탐구 능력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논의가 절실하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학생들이 AI를 사용하는 건 막을 수 없지만, 그 결과물을 ‘내 생각으로 바꾸는 훈련’은 여전히 인간 교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학습의 미래,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번 조사 결과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지적 성장과 항상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AI가 학생들에게 학습의 속도를 높여주는 동시에, ‘생각의 깊이’를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이 ‘지식 전달’에서 ‘사고 훈련’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오래된 명제가, AI 시대에 다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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